페절의 추억
나는 왠만하면 페절(페이스북 친구 거절)을 하지 않는다. 페친 신청을 했는데 야한 옷을 입은 사진, 나와는 전혀 색깔이 맞지 않는 분, 타임라인에 아무런 글도 없는 분 빼고 말이다.
언젠가 커피 원가에 대한 생각을 올린 적이 있고 어떤 분이 친구 신청을 했다. 나는 같은 커피 업계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수락을 했고 그 분의 글이 타임라인에 뜨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커피는 과일같은 신맛이 나야 정상이고, 쓴맛은 건강을 헤친다는 다소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내용들이 주였다. 커피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그 분이 글을 올리면 댓글
은 반대의 의견이 올라왔고 설전을 벌였다.
나도 한번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 디카페인 커피 때문이다. 그 분의 요지는 아주 약배전을 하면 좋은 카페인이 나오기 때문에 굳이 디카페인이 필요없다라는 취지의 글이다.
그러나 나는 카페인은 화학성분이고 몸에서 분명히 카페인 성분이 민감하신 분이 있기 때문에 디카페인 커피는 필요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 말은 나의 경험에 비롯된 것이었다. 커피를 한모금만 마셔도 심장이 두근 거리는 손님이 디카페인 생두로 로스팅한 커피는 한잔을 마셔도 전혀 지장이 없었고 잠도 잘 주무셨다.
나는 이런 나름의 임상실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답변이었다. 아마도 디카페인 생두를 로스팅하지 않았던 분들은 모르셨을 것이다. 그 분은 전혀 다른 사람의 의견은 수용하지를 못했고 자신의 말만 맞다고 박박 우겼다.
내가 참고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카페인은 약배전이나 강배전이나 유의미할 정도록 카페인 차이가 크지 않다. 오히려 약배전 커피가 건강에 더 좋지 않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다. 그 만큼 커피는 의학계에서도 아직은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로스팅한 커피, 자신이 내리는 방법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에 타임라인에서 그 분의 글이 뜨지 않게 조치를 취했다.
어느날 어떤 글을 쓰시는지 검색을 해봤더니 명단이 뜨지 않는다. 나를 차단시켜 놓으신 것이다.
누군가 나를 페절한다. 친구를 끊었다고 해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어짜피 실제로는 얼굴도 못 뵈었으니 말이다.실제 만남 전의 페이스북 친구의 관계는 인스턴트 식품과 같다. 쉽게 친구가 되고 쉽게 친구가 안 된다.
정기적으로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하시는 고객님이 계시다. 그 분은 디카페인 커피가 있어서 다행이시라 한다. 1년도 넘게 주문해 드시니 분명 그 분에게 만큼 디카페인 커피는 기호 식품이라 생각한다.
디카페인이 맛이 없다라는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물론 디카페인이 일반 스페셜티 같은 맛이 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디카페인 생두 자체의 품질과 맛이 월등히 올라가서 하나의 다른 커피로 분류해도 될 정도록 독특한 맛이 있다고 판단했다.
카페인이 몸에 좋으냐 안 좋으냐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인것 같다. 그러나 확실한건 카페인이 몸에 안 받는 분은 분명히 계시다는 것이다. 커피 하시는 분들은 이런 소수의 분들을 위한 대안 정도는 하나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 디카페인생두 로스팅을 하면서 든 생각
-- 사진은 로열커피 과테말라 아소바그리 로얄셀렉트 디카페인